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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관련 소식들을 전해 드립니다.

‘유럽판 TED’ 기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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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대 VOX를 이끌고 있는 김성희 교수.


“옥스포드에 넘쳐나는 석학, 그리고 매주 찾아오는 명사들 그들은 인류가 낳은 보물들입니다. 왜 그들의 지식을 일부만 향유할까요?”

2006년 여름 늦깎이로 옥스퍼드에서 영어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성희(64) 서울공대 객원교수 겸 중국 시안 리버풀대 초빙교수는 늘 궁금했다.

그는 친분이 있던 옥스퍼드대 교수들과 식사를 하던 중 질문을 던졌다. 김 교수는 “이곳에서 배울 수 있는 지식들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털어놨다. ‘보이스 프롬 옥스퍼드(Voices from Oxford: VOX)’가 탄생한 배경이다. 


옥스퍼드 대학의 최고 석학으로 꼽히는 데니스 노블, 빌 더튼 교수가 좋은 생각이라며 지지하고 나섰고, 엑서터 칼리지의 프랜시스 케언크로스 학장이 첫 번째 인터뷰이로 나섰다. 세계적인 과학자 리처드 도킨스와 BBC 트러스트(Trust) 회장 크리스 패턴, 케임브리지 대학 명예 총장 샌즈배리 경, 런던 시장 보리스 존슨,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에드먼드 펠프스 교수가 VOX에 출연해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나눴다.

“처음엔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주위 분들이 도와준 덕분에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요즘엔 세계 석학들로부터 우리와 인터뷰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습니다.”

6년간 VOX 대표로 활동해온 김 교수는 최근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다. 차 한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의 지식 공유 프로그램 ‘티톡스(T-Talks)’다. 유럽과 아시아의 주요 인사들이 자신의 경험을 차 한잔 마실 정도 시간인 7분간 이야기하는 지식공유 프로그램이다. 미국에서 많은 인기를 얻은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의 영국판인 셈이다. TED는 ‘전달할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Ideas worth spreading)’를 모토로 대중적인 관심을 모은 지식 공유 프로그램이다. 미국 비영리 재단에서 주최하는데 주로 기술, 오락, 디자인 등과 관련된 강연회를 연다.

김 교수는 옥스퍼드 TED에 유럽과 아시아의 가치를 담을 계획이다. 미국 TED는 북미 지역의 지식인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지역적인 제한이 있었다. 지식 전달에 무게를 두고 운영한 특징도 있다. 김 교수는 옥스퍼드대 뿐만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의 석학과 유명인사를 중심으로 옥스퍼드 TED를 이끌어갈 생각이다. 단순한 지식이라면 TED로 충분하다. 하지만 사람은 문화적인 존재다. 자신이 자라온 환경에서 고유한 경험을 하며 성장한다. 티톡스는 인간의 본질을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한다. 김 교수는 “준비는 거의 끝났고, 하반기면 본격적으로 ‘티톡스’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석학을 만나며 옥스퍼드대를 누비는 김교수는 사실 평범한 가정주부 출신이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로 평생을 살았다. 아이들이 성장해 어른이 됐다. 부모로서의 의무를 마치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인생이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생각했습니다. 평생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살았다면 이제는 나를 위해서도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1년 그녀가 옥스퍼드대에서 공부를 시작한 배경이다. 남편인 서울대 의대 엄융의 교수와 자녀들은 적극적으로 엄마를 지원했다. 힘들게 대학에 입학한 김 교수는 도전을 시작했다. 당시 학교에서 가장 나이 많은 학생이었다.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매일 새벽 5시 교내 엑서터칼리지 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 수위가 “도대체 잠은 언제 자느냐”고 말할 정도로 학업에 몰두했다.

공부만 열심히 한 것은 아니다. 관심 있는 일에는 무섭게 빠져들었다. ‘이 나이에 못할 것이 무엇인가’라며 나이트 클럽에도 갔고, 교내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아프리카 출신의 친구가 대학원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자 선거 운동을 도맡아 하기도 했다. 미국 출신의 강력한 경쟁자를 제치고 아프리카 여성이 옥스퍼드 대학원 학생회장에 선출된 일은 당시 대학에서 커다란 화제를 불러 모았다.

옥스퍼드대 한국사무소 대표로 한국인 대변인 역할을 도맡아 해냈다. 중국에서 옥스퍼드대로 유학온 학생들과 친분을 쌓아 ‘옥스퍼드 중국 프로젝트’ 대표도 맡았다. 옥스퍼드대를 찾은 중국은행 간부 35명의 연수프로그램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것이 계기가 돼 앞으로 그녀는 전공인 영문학과 함께 중국 관련 연구도 계속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순수한 열정. 김 교수와 인터뷰 하던 중 느낀 점이다. 그녀는 도전을 추천했다. 원하는 것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실패나 성공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무조건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이, 환경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언가 하고 싶다고 입 밖에 냈을 때는, 말하기 전에 오랫동안 가슴 속에 품고 있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평생 후회할지 한번 질러볼지는 본인의 몫입니다.”

김 교수는 주부로서의 삶에 대해서도 높은 평가를 했다. 전업주부는 가정을 이끌어 가는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하지만 그녀는 마음속에 하고 싶은 일들이 있었다. 주부 생활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자 도전에 나선 이유다.

옥스퍼드에서 그녀는 수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지금의 그녀의 가장 큰 도전은 티톡스다. 옥스퍼드 TED가 과연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위에서 관심이 많다. 김 교수는 “유럽과 아시아의 지혜를 나누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며 “당장 눈앞의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멀리 보며 한걸음씩 나아가겠다”고 말했다.